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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말을 사랑하는 법

by 육각렌치 2023. 2. 17.






진 종마가 풀을 뜯고 있다.
그곁에는 그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그 종마 를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부탁한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그 멋진 종마를 사랑하고, 또 그 말 이 자신을 얼마나 믿고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이제 그 종 마와 단둘이 보낼 시간이 주어진 것이 뛸듯이 기쁘다.
그런데 그종마가 병이 난다. 밤새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 하는 종마에게 소년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원한 물 을 먹이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소년의 눈물겨운 간호도 보람없이 종마는 더 심하게 않았고,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 가 돌아왔을 때는 다리를 절게 되어버린다. 놀란 할아버지 는 소년을 나무랐다.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 랐단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다.
"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고 그 말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말한다.
"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본문 p 162~163)



소설 <봉순이 언니> 의 내용이다. 봉순이 언니는 옛날 TV예능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끈 작품이다. 나도 읽긴 했는데 봉순이언니가 식모였던가하는 설정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위의 내용도 어느 대목에 나오는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위 내용은 20여년 째 내 무의식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인상깊은 이야기다.


봉순이 언니를 다시 읽는다면 전보다는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주인공과 식모의 관계를 다룬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를 김영하의 목소리로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나는 연락이 끊긴 오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은 보고 싶었으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친구는 가정사 때문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지방에 돈을 벌러 갔었다고 했다. 그 친구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불완전했던 대화와 세월의 벽에 대해 생각했다. 진심으로 보고싶던 친구였다.


그리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술을 마셨다. 소설의 주인공이 오랜만에 찾아간 순애언니와 멀어지는 장면에 빗대어 나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나는 그 세월의 벽을 극복하지 않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가장 씁쓸한 장면 중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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